뉴욕에서 건축사로 일하는 에이미는 스파 휴양지에서 마사지를 받다가 마사지사 버질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그만 흐느껴 울게 된다. 에이미는 촉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버질을 통해 메말랐던 감정이 되살아 나는 걸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각자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알려주며 가까워진다. 버질이 눈이 멀기 전 처음으로 본 건 구름처럼 푹신한 것이었다는데, 그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영화 <사랑이 머무는 풍경> 줄거리
영화 <사랑이 머무는 풍경>은 1999년 개봉한 드라마 장르 작품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만큼 스토리가 탄탄하다. 영화는 대도시 뉴욕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건축가 에이미 베닉(미라 소르비노)이 휴가를 떠나며 시작된다. 에이미가 택한 곳은 스파를 즐길 수 있는 휴양지 파인크레스트이다.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는데, 그곳에서 연못 위에서 하키 연습을 하는 남자를 우연히 보게 된다. 숙소에 도착한 에이미는 다음날 숙소 1층에서 마사지를 받는다. 마사지사 버질(발 킬머)은 뉴욕의 도시 생활에 지친 에이미의 피로를 정성껏 풀어준다. 마사지를 받던 에이미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버질의 손길에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버질의 마사지가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버질은 옆에 앉아 손을 마사지해 주며 에이미를 다독여준다. 에이미는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서 밖으로 나가 버질을 찾아간다. 아까 울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하키 스틱을 든 버질을 보고 어젯밤 연못에서 봤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사를 하려던 순간 에이미는 버질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버질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버질은 선척적 문제로 어릴 적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집에 온 버질은 안내견 제시를 쓰다듬고 나서 TV를 켠다. 그리고 제시에게 오늘 에이미와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 에이미의 목소리가 너무 근사하고, 계피향이 나는 여자였다고 얘기한다. 집에 와 있던 누나 제니(켈리 맥길리스)가 이 얘길 듣는다. 제니는 앞을 못 보는 동생을 위해 가끔씩 생필품을 사서 집에 가져다주곤 했다. 제니는 잠깐 왔다가 떠날 관광객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생이 내심 걱정된다. 버질은 에이미의 방으로 찾아가 동네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한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버질은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길거리 풍경을 설명한다. 에이미는 언제부터 앞이 안 보였는지 묻는다. 버질은 한 살 때부터 눈에 이상이 생겼고, 완전히 실명한 건 3살 때였다고 말한다. 버질은 선청선 백내장과 색소성 망막증으로 시력을 잃은 것이며, 불빛 같은 것도 안 보이는 완전한 어둠 속에 살고 있다. 이번에는 에이미가 버질에게 길거리 풍경을 얘기해 준다. 에이미는 건물 양 옆의 나무를 남자와 여자로 비유하고, 남자가 여자에게 춤추자고 요청하니까 여자가 수줍어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두 사람은 낡은 건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비를 맞으며 촉각에 의지해 서로 감정을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 버질에게 마사지를 받던 에이미는 시력을 잃기 전 봤던 것 중 기억나는 게 있는지 묻는다. 버질은 푹신하고 만질 수 있는 거였는데 뭔지는 모른다고 답한다. 아주 기분 좋은 기억이었다고 한다. 에이미는 자신은 두세 살 때 본 수평선이라고 말한다. 수평선이 뭔지 모르는 버질에게 에이미는 수평선에 대한 기억을 나눠 준다. 버질은 집에 에이미를 초대한다. 하지만 에이미는 뉴욕에 일이 생겨 급히 뉴욕으로 돌아간다. 에이미는 이혼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전남편 덩컨(스티븐 웨버)과 함께 건축사 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에이미는 뉴욕으로 돌아와서 백내장을 검색해 본다. 지난 5년 간 함께 살았던 남자 덩컨은 사막처럼 감정이 메마른 인물이었다. 그러다 버질을 만나 내면 속 깊은 감정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던 것. 얼마 후에 에이미는 다시 버질을 찾아간다. 함께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전남편을 어떻게 만났는지 얘기해 주고, 아직도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에이미는 버질의 집에서 사진첩을 구경하다 사진첩에서 찰스 아론 박사의 자료를 보게 된다. 신문기사에는 '맹인 시력 회복이 가능한 실험적인 수술법'이라고 적혀 있다. 에이미는 아론 박사(브루스 데이비슨)에게 연락한 후 버질에게 눈을 고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버질은 기뻐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이미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데, 막연한 희망과 실망을 또다시 겪는 게 싫은 것이다. 에이미는 버질이 어릴 적 이미 수많은 검사와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아무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결국 버질은 에이미의 뜻대로 아론 박사를 만나기로 하고 함께 뉴욕으로 향한다. 아론 박사는 25년 전 수술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며 버질을 설득한다. 실패해도 여기에서 더 나빠질 건 없다는 박사의 말에 버질은 마침내 수술을 받기로 결심한다. 에이미가 만든 조각품과 설계도면을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버질이 수술을 받는 동안 에이미는 제시에게 남매의 부모님 얘기를 듣는다. 버질의 어머니는 버질이 청소년일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고 한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버질이 안대를 푸는 날이 되었고 모두가 기대에 차서 버질 옆에 둘러앉았다. 버질은 안대를 풀고 눈을 조심스럽게 뜬다. 하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모든 것이 너무 혼란스럽고 낯설 뿐이었다. 박사는 수술이 잘 되었으니 적응하면 될 것이라고 말하고 나간다. 그리고 시각치료사 필 웹스터를 소개해 준다. 필은 버질이 겪는 현상을 전문 용어로 '시각적 인지 불능'이라고 설명해 준다. 장기 시각 장애 후 시력 회복의 과정은 연옥과 같아서 힘겨운 시간이 될 것이라는 글을 읽어 준다. 그러면서 교과서적인 매뉴얼은 없다며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린 일임을 강조한다. 버질은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보고 관찰한다. 하지만 버질은 오랫동안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촉각에 의존해서 사물을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입체감을 이해하지 못해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아론 박사는 버질이 혼란을 겪는 건 시각적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버질은 일자리를 구하러 마사지샵에 가지만, 글을 읽는 것을 어려워해서 서류 작성도 하지 못한다. 한편, TV 뉴스를 통해 버질의 소식을 접한 버질의 아버지는 누나 제니에게 연락한다. 하지만 버질은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버질과 에이미는 덩컨의 생일파티에 참석한다. 에이미가 덩컨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입맞춤을 하고 버질이 멀리서 그 모습을 본다. 눈에 보이는 것을 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게 어려운 버질에게는 그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버질은 기분이 상해서 자리를 뜨는데, 그만 앞에 있던 유리에 부딪히고 만다. 그날 밤, 에이미는 내일 덩컨과 함께 애틀랜타에 회의하러 가겠다고 말한다. 버질은 에이미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보다 내가 시각장애인이었을 때 당신이 더 잘 보였던 것 같아." 덩컨과 애틀랜타에 간 에이미는 회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다가 분위기에 취해 덩컨과 키스를 하게 된다. 실수를 깨달은 에이미는 급히 집으로 돌아와 버질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사과한다. 버질은 최근 아버지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아버지를 실망시킬까 봐 겁이 나서 만나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렇게 서로의 속얘기를 하며 두 사람은 다시금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다. 차츰 시력을 회복한 생활에 적응해 가던 어느 날, 버질은 눈에 이상을 느끼고 급히 아론 박사를 찾아간다. 박사는 버질의 망막에 스파크가 있은 뒤에 아무 반응이 없다고 한다. 망막 질환이 다시 생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따라서 2주에서 한 달 사이에 다시 시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버질은 크게 상심한다. 버질은 아버지를 찾아가서 그때 왜 떠났느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아들 눈 하나 못 고치는 자신이 너무 실패자처럼 느껴졌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하지만 이렇게 시력을 찾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기뻐한다. 버질은 다시 시각장애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얘기해 준다. 그리고 엄마와 누나가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느냐며 아버지를 원망한다. 버질은 에이미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고 하키를 보러 하키장에 간다. 거기에서 솜사탕을 보게 되고 하나 사서 가져온다. 버질이 눈이 보이던 어린 시절 봤던 건 다름 아닌 솜사탕이었다. 하키장에서 버질의 눈에 또다시 이상이 찾아오고, 버질은 에이미에게 다시 시각장애인이 될 것이라고 얘기해 준다. 버질은 파인크레스트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싼다. 그리고 에이미에게 제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리라고 외친다. 고향으로 돌아온 버질은 다시 눈이 멀기 전에 세상을 눈에 담는다. 길거리의 풍경과 책, 잡지, 사진 등을 열심히 보고 또 보면서 세상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나에게 눈먼 동생을 돌보느라 잃었던 삶을 되찾으라고 얘기해 주며 그간의 고마움을 전한다. 결국 다시 눈이 멀게 된 버질은 강단에 서서 잠깐이나마 봤던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에이미가 나타난다. 에이미는 독립해서 회사를 차린 근황을 얘기해 준다. 버질은 예전처럼 에이미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만진다. 버질이 에이미를 보는 방식이다. 두 사람과 안내견이 산책을 하러 가는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등장인물
버질: 파인크레스트에서 마사지사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선천적 결함으로 세 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다. 에이미: 뉴욕에 사는 건축사. 덩컨과 이혼했지만, 아직 전 남편과 함께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가 휴양지 파인크레스트에서 버질을 만난다. 덩컨: 에이미의 전 남편. 에이미와 함께 건축사 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제니: 버질의 누나.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가 사망한 뒤 줄곧 동생을 돌봐 온 인물이다. 버질의 아버지: 버질이 청소년일 때 집을 나간다. 벳시: 에이미와 함께 일하는 건축사 사무소 동료
결말과 리뷰
이 영화는 셜과 바바라 제닝스(Shitl and Barbara Jennings)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올리버 색스 박사가 두 사람의 얘기를 기록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에이미가 버질의 마사지를 받다가 흐느끼는 영화 초입부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부드러운 손길, 두 사람의 얼굴로 떨어지던 비 등 촉각으로 서로 교감하는 과정을 잘 표현해서 더 깊게 몰입되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같지만,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시각장애인을 보는 편견이다. 평생 앞을 못 보던 사람이 시력을 회복하면 다들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갑자기 시력을 회복하면 지금껏 세상을 인식하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것이다. 앞을 잘 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눈이 멀게 되는 것만큼의 변화일 것이다. 버질 역을 맡은 발 킬머의 연기도 너무나 섬세하고 좋았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촉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과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만나서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셈이다. 그렇게 보면 그리 특이할 것도 없다. 다시 눈이 멀게 된 버질은 강단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나 타인 또는 인생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건 암흑 속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전 지금 앞이 보였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본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나 타인 또는 인생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건 암흑 속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자신을 보게 되면 정말 많은 것을 본 셈이죠." 이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다시 보다가 또 코끝이 찡해졌다. 따뜻한 힐링 영화, 실화에 기반해 더 현실성 있고 균형감 있는 영화를 보고 싶은 분께 추천드린다. 비슷한 영화로는 <사랑의 기적>이 있다. 한 계절 동안 깨어나 움직이고 춤추고 사랑하는 영화로 이 작품 역시 추천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문득 이렇게 나에게 묻게 된다. '나의 사랑이 머문 풍경은 어디인가? 나의 솜사탕은 무엇인가?'